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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보다 못한 놈'? 반려견 훈련사가 보기엔 아닙니다

서울뉴스싱귤러2024-03-29 14:48:05【지식】1사람들이 이미 둘러서서 구경했습니다.

소개[개를 위한 개에 대한 이야기] 철저히 현재만을 사는 개, 어떨 땐 사람보다 낫다반려견 훈련사로서 가장 큰 깨달음은 훈련 기술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에 있었습니다. 보호자와 반려견

'개보다 못한 놈'? 반려견 훈련사가 보기엔 아닙니다

[개를 위한 개에 대한 이야기] 철저히 현재만을 사는 개, 어떨 땐 사람보다 낫다

반려견 훈련사로서 가장 큰 깨달음은 훈련 기술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에 있었습니다. 보호자와 반려견, 가까이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진짜 그들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기자말>

"혹시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어딘가에서 소개를 할 때, 내 직업을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을 신기해한다. 다소 흔하지 않은 직업이기도 하고, 요즘 들어 반려견 콘텐츠가 많아져서 감사하게도 더 큰 관심을 가져주는 것 같다. 대부분은 "귀여운 강아지랑 일해서 행복하겠어요!"라고 말씀들을 많이 해주신다. 일부분 동의하기도 하지만, 세상엔 그렇게 마냥 쉽기만 한 직업은 사실 없다. 

나는 대학을 반려동물학과를 나왔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싫어서 동물과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에 지원한 학생들이 많다는 걸 대학 1학년 때 이미 알게 되었다. 이 학생들이 원서를 쓸 땐 강아지와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학생들은 반려동물 훈련을 위해선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는 걸 알고는, 결국 도전하지 않거나 직업을 포기한다.

2021년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2021년 고용영향평가 결과발표회) 반려동물 관련 직업의 근속연수가 1년 이하라 한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이런 배경엔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 대한 버거움도 있다는 걸 현직에서는 크게 느끼곤 한다.
 
▲ 방문 교육 현장 보호자에게 설명해주는 모습. 반려견 교육은 보호자와 반려견 둘 다를 공감하고 이해시켜줘야 하는 일이다.
ⓒ 최민혁

 
그렇다. 사실 반려견 훈련사는 보호자와 반려견을 둘 다 상대해야 하는 직업이다. 반려동물을 귀여워하기만 하는 가벼운 직업은 더더욱 아니다. 특히 교육은 반려견 스스로 신청하는 게 아니고 보호자가 신청하는 것이다. 또 훈련사의 교육은 그대로 반려견에게 전달되는 게 아니라 보호자를 통해 전달되기 때문에, 보호자와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훈련사는 꽤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 보호자를 상대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기보단, 반려견을 교육할 때 그렇듯 보호자에게도 단순히 교육 내용을 주입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파악해야 하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생각보다 보호자 이야기에서 반려견이 변화할 수 있는 힌트가 많기 때문에 그렇다.

이것을 알고부터 나는 사람에 대해 공부하는 것도 훈련사로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어느샌가 나의 유튜브 알고리즘과 서적들은 사람의 정신과 심리에 대한 내용들로 채워졌다(책으론 <한국인의 정신건강(이후경)>,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오은영)>과 유튜브 채널 '양 브로의 정신세계'가 도움이 많이 됐다.) 그렇게 사람의 심리와 정신에 대해 알아보면서 예상치 못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개들은 이미 현명하다

우리나라는 안타깝게도 개에 대한 좋지 않은 격언이나 비유가 많다. 이를테면 '개보다 못한 놈', '제 버릇 개 줄까', '개가 웃을 일이다' 같은 말들이다. 

사실 10여 년 가까이 훈련사로서 일해온 내 입장에서 이런 말들은 무척 어처구니없는 말이긴 하다. 개는 어떤 면에선 이미 인간보다 한수 위라는 것을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다. 개에게도 인간이 배울 점이 있다는 얘기다. 현대인들이 우울해지고 불안해지는 것들은 대부분 다음과 같다고 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 남과의 비교, 사회적 가면의 버거움. 대략 이런 것들이다. 

이런 우울, 불안, 스트레스들을 떨치기 위해서 현대인들은 다양한 활동을 한다. 정신의학 진료를 받기도 하고, 운동이나 명상을 하기도 하고, 취미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변화 과정이 마냥 쉽지는 않고, 그래서 그만큼 관련된 시장도 점점 커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물론 개들도 정신적, 심리적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만큼은 아니라는 것을 훈련사 생활을 하면서 깨달았다.
 
▲ 기분 좋은 반려견 개들은 지금 즉시 느끼는 감정에 솔직하고 현재에 산다.
ⓒ 최민혁

 
먼저, 개들은 철저히 '현재'를 사는 동물이다. 개들은 생일 같은 날을 기념하지 않고, 시계를 보지도 않는다. 새해가 돼 한 살 더 먹었다고 울적해하지도 않고, 특별히 캘린더를 사서 하루하루를 기록하지 않는다. 그저 눈뜨고 마주하는 현재의 상황과 감정에 충실할 뿐이다. 인간에 비해 단순하게 살지만, 단순하게 살아서 현재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이건 개들이 가진 매우 큰 장점 중 하나이다. 

인간은 현재에 살지 못해서 정신적으로 괴로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통상 사람은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 않나. 그에 비해 개들은 지금 이 순간을 산다. 

개들은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의 개 전문가이자 명예 교수인 스탠리 코렌(Stanley Coren)은 개의 뇌 나이를 2.5세에서 3세 정도라고 밝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사람은 3살 이후가 되어야 거울에 있는 자신을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자아인지'가 되기 시작한다는 점. 개뿐 아니라, 대부분의 많은 포유동물들이 자아인지를 하지 못한다. 개들이 거울 속 자신을 보고 짖기도 하는 것이 그러한 이유다.

그저 자신의 기준대로 살 것

개들은 자아에 대한 개념이 인간과 다르기 때문에 개들은 내가 남에게 어떻게 비칠지도, 남과 나를 비교하여 낙담하지도 않는다. 거기다 현대인들의 정신, 심리에 영향을 끼치는 SNS도 개들에겐 없다. 개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SNS를 하면서 그렇듯 타인의 재력, 외모, 경험 등을 부러워하거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기준대로 살뿐이다. 

개들은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개들은 상황에 맞는 자신의 감정에도 솔직하다. 개들은 흥분하거나, 불편하거나, 싫으면 표현한다. 그 강도가 적을 뿐이지 분명히 어딘가에는 한다.

인간이 사회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늘 하고 싶은대로 하며 살 순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답지 못한 채로 사는 것은 정신적, 심리적으로 좋지 않은 것 중에 하나다. 항상 참고 사회적으로 인내만 하는 과정은 정신적, 심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개들은 그런 의미에서 더 솔직한 삶의 자세를 가진 셈이다.
 
▲ 개들과 한 컷  결국 나를 가르친 건 개들이었다.
ⓒ 최민혁

 
10여 년 가까이 훈련사로서 일해오면서 나는 내가 개들을 늘 가르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가르치면서 배우는 대상 또한 개였다. 개들은 늘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특히 사람의 심리, 정신 쪽 공부를 하면서 새삼 개에게 배우는 것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평균 15년 안팎으로 사는 개들은 인간에 비해 한없이 짧게 산다. 하지만 짧은 만큼 현재와 오늘에 충실하고, 깔끔하고 단순하게 산다. 

많은 보호자들은 개를 측은하고 항상 아껴줘야 하는 대상으로 볼 때가 많다. 하지만, 오늘 기분 좋으면 원 없이 꼬리 흔들고, 온 혀가 헐떡일 정도로 활짝 웃으며 뛰는 개들을 보라. 오히려 사람은 그렇지 않다. 현대에 많은 자극과 생각으로 복잡해지기 쉬운 시대에 개들은 어쩌면 가장 현명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대박입니다!(5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