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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형의 닥터 사이언스] NASA의 비밀 계획이 만든 위대한 여정, 보이저와 작별을 준비할 때
서울뉴스싱귤러2024-03-29 20:10:15【탐색하다】9사람들이 이미 둘러서서 구경했습니다.
소개닉슨 설득해 175년 만에 행성 정렬한 1977년 쌍둥이 탐사선 발사지난해부터 통신 두절, 원자력 동력 꺼지면 지구와는 영원히 작별보이저 1호, 4만년 뒤 북극성 방향 별 ‘글리제
닉슨 설득해 175년 만에 행성 정렬한 1977년 쌍둥이 탐사선 발사
지난해부터 통신 두절, 원자력 동력 꺼지면 지구와는 영원히 작별
보이저 1호, 4만년 뒤 북극성 방향 별 ‘글리제 445′와 첫 조우 예정
1970년대 초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고위 관계자가 백악관으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찾아갔다. 그는 “우주 탐사의 가장 큰 기회가 175년 만에 찾아왔다”고 했다. 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 등 태양계에서 지구 바깥쪽 궤도를 도는 외행성(外行星)이 일자로 늘어서는 이른바 ‘행성 정렬(Grand Alignment)’을 맞아 탐사선을 쏘아 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행성 정렬 시기에는 탐사선이 가장 짧은 거리로 여러 행성을 방문할 수 있다. 닉슨은 시큰둥했다. 공화당인 닉슨은 인류를 달로 보낸 아폴로 계획을 존 F. 케네디와 민주당의 업적으로 여겼고 NASA 권한을 줄이려 애썼다. 우주 탐사 같은 거창한 목표보다는 미국인의 현실에 예산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NASA 관계자는 닉슨에게 “지난 행성 정렬 때는 토머스 제퍼슨이 당신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에 닉슨을 빗대며 역사에 남을 결단을 부추긴 것이다. 닉슨도, NASA도 공식적으로 밝힌 바 없지만 과학자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항해자 보이저(Voyager)호 탄생 스토리이다.
1500명의 엔지니어가 5년을 매달린 끝에 쌍둥이 탐사선 보이저 1·2호가 1977년 우주로 떠났다. 목표는 목성과 토성 탐사였고, 기간은 4년이었다. 그런데 NASA는 두 탐사선 개발에 무려 2억달러(약 2600억원)를 쏟아 부었다. 개념만 있었던 우주 원자로를 장착했고, 컴퓨터·카메라·통신 장비에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기능을 추가하는 기술도 이때 개발했다. 보이저호가 목성에 다가가자 NASA가 숨겨왔던 계획이 공개됐다. 175년 만의 기회를 놓치기 싫었던 과학자들은 처음부터 천왕성과 해왕성은 물론 태양계 밖까지 보이저호를 보낼 작정이었다. 정치권과 정부는 “보이저호에 약간의 예산만 추가하면 다른 탐사선을 쏘지 않아도 된다”는 NASA의 속삭임을 거절하지 못했다. 보이저 1·2호는 1979년 목성, 1981년 토성을 지난 뒤 다른 항로를 택했다. 보이저 1호는 2012년 태양계의 경계에 들어섰고, 2018년 태양계를 벗어나 ‘인터스텔라(성간)’ 항해를 시작했다. 보이저 2호는 1986년 천왕성, 1989년 해왕성을 만난 뒤 보이저 1호의 뒤를 따라 태양계 밖을 향했다. 47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지구에는 보이저호 발사 이후 태어난 30억명의 사람이 살고 있고 보이저호 담당 엔지니어는 단 9명만 남았다. 오늘날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는 16기가바이트 스마트폰 메모리는 보이저호 컴퓨터 메모리보다 23만5000배 용량이 크고, 처리 속도는 17만5000배 빠르다. 보이저호가 이뤄낸 기념비적인 업적들이 새삼 놀랍게 여겨지는 부분이다.
지난해 11월부터 보이저 1호는 알 수 없는 오류 코드만을 보내고 있다. 명령을 보내고 받는 데만 45시간이 걸리는 곳에 있는 보이저호를 되살리려 은퇴한 엔지니어들까지 불러들였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NASA는 “노트북 화면이 완전히 꺼진 상태에서 커서가 어디 있는지 찾는 것 같은 과정”이라고 했다. 넉 달간의 노력으로 약간의 신호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지만, 과학자들은 보이저호를 떠나보낼 때가 됐다는 것을 알고 있다. 통신 복구 시도는 인류의 역사를 새로 쓴 낡은 탐사선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한 노력이다. 보이저 1·2호의 원자력 동력은 2025년이면 사그라진다. 이제까지 달려온 힘으로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 남았지만, 보이저호의 여정은 끝나지 않는다. 4만년 뒤 보이저 1호는 북극성 방향의 별 ‘글리제 445′를 지난다. 인류의 피조물이 처음으로 태양이 아닌 별과 만나는 순간이다. 지구에서 그 소식을 전해 들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NASA 과학자들은 행성 정렬을 맞아 태양계 밖으로 탐사선을 보내는 계획을 ‘그랜드 투어(위대한 여정)’라고 불렀다. 보이저 계획에 참여했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보이저호가 언젠가 인류 이외의 고도 문명과 만나기를 기원하며 “보이저호는 한 문명의 섬에서 다른 문명의 섬으로 우주의 바다를 가로지르는 선물”이라고 했다. 보이저호에 인류의 문화와 음악을 담은 ‘골든 레코드’가 실린 이유이기도 하다. 이보다 더 위대한 여정이 있을까.
지난해부터 통신 두절, 원자력 동력 꺼지면 지구와는 영원히 작별
보이저 1호, 4만년 뒤 북극성 방향 별 ‘글리제 445′와 첫 조우 예정
일러스트=이철원
1970년대 초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고위 관계자가 백악관으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찾아갔다. 그는 “우주 탐사의 가장 큰 기회가 175년 만에 찾아왔다”고 했다. 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 등 태양계에서 지구 바깥쪽 궤도를 도는 외행성(外行星)이 일자로 늘어서는 이른바 ‘행성 정렬(Grand Alignment)’을 맞아 탐사선을 쏘아 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행성 정렬 시기에는 탐사선이 가장 짧은 거리로 여러 행성을 방문할 수 있다. 닉슨은 시큰둥했다. 공화당인 닉슨은 인류를 달로 보낸 아폴로 계획을 존 F. 케네디와 민주당의 업적으로 여겼고 NASA 권한을 줄이려 애썼다. 우주 탐사 같은 거창한 목표보다는 미국인의 현실에 예산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NASA 관계자는 닉슨에게 “지난 행성 정렬 때는 토머스 제퍼슨이 당신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에 닉슨을 빗대며 역사에 남을 결단을 부추긴 것이다. 닉슨도, NASA도 공식적으로 밝힌 바 없지만 과학자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항해자 보이저(Voyager)호 탄생 스토리이다.
1500명의 엔지니어가 5년을 매달린 끝에 쌍둥이 탐사선 보이저 1·2호가 1977년 우주로 떠났다. 목표는 목성과 토성 탐사였고, 기간은 4년이었다. 그런데 NASA는 두 탐사선 개발에 무려 2억달러(약 2600억원)를 쏟아 부었다. 개념만 있었던 우주 원자로를 장착했고, 컴퓨터·카메라·통신 장비에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기능을 추가하는 기술도 이때 개발했다. 보이저호가 목성에 다가가자 NASA가 숨겨왔던 계획이 공개됐다. 175년 만의 기회를 놓치기 싫었던 과학자들은 처음부터 천왕성과 해왕성은 물론 태양계 밖까지 보이저호를 보낼 작정이었다. 정치권과 정부는 “보이저호에 약간의 예산만 추가하면 다른 탐사선을 쏘지 않아도 된다”는 NASA의 속삭임을 거절하지 못했다. 보이저 1·2호는 1979년 목성, 1981년 토성을 지난 뒤 다른 항로를 택했다. 보이저 1호는 2012년 태양계의 경계에 들어섰고, 2018년 태양계를 벗어나 ‘인터스텔라(성간)’ 항해를 시작했다. 보이저 2호는 1986년 천왕성, 1989년 해왕성을 만난 뒤 보이저 1호의 뒤를 따라 태양계 밖을 향했다. 47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지구에는 보이저호 발사 이후 태어난 30억명의 사람이 살고 있고 보이저호 담당 엔지니어는 단 9명만 남았다. 오늘날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는 16기가바이트 스마트폰 메모리는 보이저호 컴퓨터 메모리보다 23만5000배 용량이 크고, 처리 속도는 17만5000배 빠르다. 보이저호가 이뤄낸 기념비적인 업적들이 새삼 놀랍게 여겨지는 부분이다.
지난해 11월부터 보이저 1호는 알 수 없는 오류 코드만을 보내고 있다. 명령을 보내고 받는 데만 45시간이 걸리는 곳에 있는 보이저호를 되살리려 은퇴한 엔지니어들까지 불러들였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NASA는 “노트북 화면이 완전히 꺼진 상태에서 커서가 어디 있는지 찾는 것 같은 과정”이라고 했다. 넉 달간의 노력으로 약간의 신호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지만, 과학자들은 보이저호를 떠나보낼 때가 됐다는 것을 알고 있다. 통신 복구 시도는 인류의 역사를 새로 쓴 낡은 탐사선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한 노력이다. 보이저 1·2호의 원자력 동력은 2025년이면 사그라진다. 이제까지 달려온 힘으로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 남았지만, 보이저호의 여정은 끝나지 않는다. 4만년 뒤 보이저 1호는 북극성 방향의 별 ‘글리제 445′를 지난다. 인류의 피조물이 처음으로 태양이 아닌 별과 만나는 순간이다. 지구에서 그 소식을 전해 들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NASA 과학자들은 행성 정렬을 맞아 태양계 밖으로 탐사선을 보내는 계획을 ‘그랜드 투어(위대한 여정)’라고 불렀다. 보이저 계획에 참여했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보이저호가 언젠가 인류 이외의 고도 문명과 만나기를 기원하며 “보이저호는 한 문명의 섬에서 다른 문명의 섬으로 우주의 바다를 가로지르는 선물”이라고 했다. 보이저호에 인류의 문화와 음악을 담은 ‘골든 레코드’가 실린 이유이기도 하다. 이보다 더 위대한 여정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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